• 화가 : 안견(安堅)
  • 부제 : 꿈과 환상에의 여행

일본에 있게 된 내력

이 그림은 안평대군이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세계를 찾아 꿈속에서 경험한 황홀한 이상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의 내용과 그에 얽힌 일화를 살펴보자.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현재 일본의 천리대학 중앙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어떤 경로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황수영박사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가 아닌 현대에 들어 와서 서울의 진고개 부근에서 일본인의 손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나 더 이상 확인할 길이 없다. 지금까지 추적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확인된 바로는 〈몽유도원도〉를 소장했던 일본에서 제일 오래된 소장가는 큐슈 가고시마 출신의 도진구징(島津久徵)이라는 사람이며, 그의 생애와 활동을 미루어 보아 〈몽유도원도〉는 적어도 1900년 이전에 일본에 건너가 있었다는 정도가 확인되고 있다.

주제와 가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이 세종 29년(1447) 어떤 날 꿈속에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여행하고 거기서 본 바를 안견에게 설명해 주어 3일만에 완성된 그림인데,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조선 최고의 그림이며, 한국회화사 전반에 걸쳐서도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몽유도원도〉에는 도원의 경치를 그린 그림과 함께 안평대군의 발문, 그리고, 안평대군의 주위에 있던 박팽년, 최항, 신숙주 등 당시의 쟁쟁한 인물 21인이 자필로 쓴 찬시도 함께 실려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몽유도원도〉는 회화 작품으로써 뿐만 아니라 서예 작품으로써, 또는 당시 안평대군을 둘러싼 중신들과의 관계를 알아 볼 수 있는 사료(史料)로써도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시문

두루마리 안쪽에는 첫머리에 〈몽유도원도〉라고 쓰여진 제첨(題簽:제목)이 붙어 있고, 그 다음에는 폭 25cm의 푸른색 비단 바탕에 여섯 행의 붉은 글씨가 쓰여 있다. 이 주서(朱書)는 안평대군이 1450년, 즉 〈몽유도원도〉가 완성된 3년 뒤에 쓴 것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세상 어느 곳이 꿈꾼 도원인가 (世間何處夢桃源)
은자(隱者)의 옷차림새 아직도 눈에 선하거늘 (野服山冠尙宛然)
그림 그려 보아 오니 참으로 좋을씨고 (著畵看來定好事)
여러 천년 전해지면 오죽 좋을까 (自多千載擬相傳)
그림이 다 된 후 사흘째 정월 밤 (後三日正月夜)
치지정에서 마침 종이가 있어 한마디 적어 맑은 정취를 기리노라 (在致知亭因故有作淸之)

화면의 전개

이 시문에 이어서 몽유도원의 세계가 전개된다. 그림을 보면 화면의 왼쪽 아래에서부터 오른쪽 위로 꿈속에 나타났던 장면이 점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화면의 왼쪽은 현실 세계가, 화면의 중간은 도원으로 들어가는 동굴과 험난한 길이, 오른쪽에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도원의 이상세계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의 중심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도원의 경치를 보면 위쪽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바위가 이곳이 동굴임을 상징하고 있으며, 복숭아나무들과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텅빈 초가집들이 보이고, 영롱한 복사꽃 사이의 물가에 작은 빈배가 매어 있다.

이런 장면들은 안평대군이 정유년(세종 29년) 4월 20일 밤에 꾸었던 꿈에 나타난 장면들을 기초로 한 것이지만, 이 꿈의 내용은 〈도화원기 桃花源記〉와 관련되어 있다. 즉, 현실 세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보는 이상향으로서의 측면과, 현실 세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하는 도가적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이 안평대군에게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으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안평대군이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읽어 늘 마음속에 되새기고 있다가 꿈을 꾸게 되었고, 꿈속의 정경도 그가 읽었던 글의 내용과 비슷하게 나타났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내용과 안평대군이 쓴 발문의 내용을 서로 비교해 보면 그의 꿈이야기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 분명히 드러난다.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내용을 소개하자면 대강 이러하다.

동진(東晉)의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어떤 사람이 고기를 잡아 생활을 했는데, 내를 따라 가다가 길을 잃게 되었다. 이때 갑자기 복숭아꽃 나무숲을 만났다. 냇물 양쪽 수백 보에 걸쳐 복숭아나무 이외에는 잡나무가 일체 없고, 향기로운 풀들만이 산뜻하고 아름다우며 떨어지는 꽃잎들이 펄펄 날리고 있었다. 어부가 이것을 매우 이상히 여기며 다시 앞으로 나아가 그 복사꽃 숲이 끝나는 곳까지 가 보았다.

숲이 다하는 곳에 물이 흐르고 문득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에는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는데, 마치 빛이 있는 듯하였다. 곧 배를 버리고 구멍을 따라 들어갔다. 처음은 아주 좁아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다시 수십 보를 가니 확 뚫리며 밝아졌다. 땅은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은 엄연하고, 좋은 밭과 예쁜 연못과 줄지은 뽕나무와 대나무 등이 있었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닭이 울고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며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녀의 옷 입는 것은 모두 바깥 세상 사람들과 같았고,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다 같이 즐거워하였다. 그곳 사람들이 어부를 보고 크게 놀라 어떻게 왔는가를 물었다. 갖추어 답하니 당장에 초청하여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식사를 대접하였다. 이 어부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캐물었다. 그들 스스로 말하기를,

“선세에 진(秦)나라 때의 난을 피하여 처자와 읍인(邑人)들을 이끌고 이 절경에 와서 다시 나가지 않았소. 그래서 드디어 바깥 사람들과 떨어지게 되고 말았소.”

라고 말하면서,

“요즘은 어떤 세상이오?”

라고 묻는 것이었다. 한(漢)나라가 있는 것도 모르고 위진(魏晉)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어부가 일일이 들은 바를 말하니 모두들 놀라고 탄식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각기 다시 자기 집에 그를 끌고 가 모두 술과 음식을 내었다. 그 후 어부는 밖으로 나와 배를 찾아서 먼저 길을 오며 곳곳에 표시를 했다. 군(郡)에 이르러 태수(太守)를 만나 자기가 겪은 일을 설명하였다. 태수는 곧 사람들을 보내 그를 따라 가서 표시한 바를 찾도록 했지만 다시 그 길을 찾지 못했다. 하남성 남양현의 유자기라는 사람은 고상한 선비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가볼 계획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하고 머지않아 병으로 죽었다. 그 후로는 마침내 도원으로 가는 그 길을 묻는 사람이 없었다.

안평대군의 발문

안평대군이 쓴 발문의 내용을 살펴보자.

정유년 4월 20일 밤에 바야흐로 자리에 누우니, 정신이 아른하여 잠이 깊이 들어 꿈도 꾸게 되었다. 그래서 박팽년과 더불어 한곳 산 아래에 당도하니, 층층의 멧부리가 우뚝 솟아나고, 깊은 골짜기가 그윽한 채 아름다우며,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있고, 오솔길이 숲 밖에 다다르자, 여러 갈래로 갈라져 서성대며 어디로 갈 바를 몰랐었다. 한 사람을 만나니 산관야복(山冠野服)으로 길이 읍하며 나한테 이르기를,

“이 길을 따라 북쪽으로 휘어져 골짜기에 들어가면 도원이외다.”

하므로 나는 박팽년과 함께 말을 채찍질하여 찾아가니, 산 벼랑이 울뚝불뚝하고 나무숲이 빽빽하며, 시냇길은 돌고 돌아서 거의 백굽이로 휘어져 사람을 홀리게 한다. 그 골짜기를 돌아가니 마을이 넓고 틔어서 2, 3리쯤 될 듯하여, 사방의 벽이 바람벽처럼 치솟고,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데, 멀고 가까운 도화 숲이 어리 비치어 붉은 놀이 떠오르고, 또 대나무 숲과 초가집이 있는데, 싸리문은 반쯤 닫히고 흙담은 이미 무너졌으며, 닭과 개와 소와 말은 없고, 앞 시내에 오직 조각배가 있어 물결을 따라 오락가락하니, 정경이 소슬하여 신선의 마을과 같았다. 이에 주저하여 둘러보기를 오래 하고, 박팽년한테 이르기를,

“바위에다 가래를 걸치고 골짜기를 뚫어 집을 지었다더니, 어찌 이를 두고 이름이 아니겠는가, 정말로 도원동이다. ”

라고 하였다. 곁에 두어 사람이 있으니 바로 최항, 신숙주 등인데, 함께 시운을 지은 자들이다. 서로 짚신감발을 하고 오르내리며 실컷 구경하다가 문득 깨었다.(하략) 안평대군이 쓴 이 발문의 내용을 보면 〈도화원기〉의 내용과 매우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감상 및 평가

결국 〈몽유도원도〉는 왕자로서의 안평대군이 현실에서 겪어야 하는 고민, 즉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하면서 오히려 거기에서 오는 갈등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찰과 번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심정에서 그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고, 또 알고 있었던 도연명의 〈도화원기〉의 세계를 찾아 꿈속에서 홀연히 도원의 세계를 여행하였으며, 그가 꿈속에서 경험한 황홀한 이상세계를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그리게 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의 출처사이트

http://koreandb.kdaq.empas.com/culture/detail?s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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