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무심결 2007. 8. 16. 00:33
無心訣(무심결)



莫存知解入此門(禪錄)
막존지해입차문
지혜를 지니고 이 문에 들지 말 지며
만일 선도를 얻기 위하여 선문에 들어오려거든 상식이나 모든 학식과 자기 지견을 완전히 비어 버리고 깨끗이 백지로 환원해 가지고 입참해야 도를 온전히 받게 되는 것이다. 그야말로 전탈전수(全奪全授)가 되어야 한다. 왜냐 하면 만일 자기 지견을 가지고 이리저리 계교하게 되면 현혹이 되고 교란이 되어서 응합이 되지못하므로 도를 얻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수화(甘水化) 백수채(白水彩)라고 한다. 도를 구하려면 전신전수(全信全受)해야 된다. 그렇지 아니하고 반만 믿으면 반만 밖에 되고, 믿지 않으면 받을 수 없게 된다. 나는 도를 구하려 왔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진리에 맡겨 버려야 한다.

但依知慧到彼岸(心經)
단의지혜도피안
다만 지혜에 의지하여야 저 언덕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지혜란 배우고 아는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깨달음에 나오는 원래의 참 지혜 광명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량으로서 아는 것이 아니라 본래 돈공한 자성 본원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를 의지하여야만 극락 정토인 저 언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處處淸淸無佛魔(臨濟)
처처청청무불마
곳곳마다 맑고 맑아서 부처도 마도 없다
본연 청정하고 원만 무애한 자성불을 깨쳐 마음의 자유를 얻어서 삼계 육도를 임의로 수용케 되니 어느 곳을 가나 모두 깨끗하기만 하여 부처도 마도 없이 진대지가 정토 아님이 없다.

歷歷孤明聽法人(臨濟)
역력고명청법인
역력히 뚜렷이 밝게 법을 듣는 사람이로다
일체 마음과 일체 경계를 깨끗이 비어 버리고 고요히 앉아서 선정 삼매에 들어 있으니 이 사람이야말로 적적 성성한 가운데서 고고 역력하게 자성 법문을 밝게 듣고 있는 사람이로다.

不變異故不□惑(忠國師)
불변이고불광혹
변동치 않는 고로 속거나 현혹하지 않는다
정법 수행에는 무엇보다도 첫째 신심이다. 신심이 철저히 굳혀야만 다시는 어떠한 사도와 외도에 속거나 유혹을 당해서 변동되는 일이 없이 초지 일관으로 불과를 이루고야 마는 것이다. 그래서 사대불이(四大不二) 신심으로 진리와 법과 회상과 스승님께 변하지 않는 신이 서야 딴 세상으로 흐르지 않는다.

無□□故無恐怖(心經)
무과애고무공포
두려웁고 걸림이 없는 고로 공포도 없다
일체 마음을 다 비어 버리고, 일체 경계를 다 여의고 보면 마음에 아무런 구애가 없는 것이다. 구애됨이 없고 보면 아무도 두려운 것이 없고 공포가 없는 것이다.

眞佛無口不說法(黃蘗)
진불무구불설법
참 부처는 입이 없으므로 법을 설하지 못한다
자성불은 원래에 형체가 없는 것이므로 따라서 입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법도 설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말 없는 법문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야 불지에 들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일찍이 한 법도 설한 바가 없었다고 하였다. 그 설하지 않는 법이 삼천 대천 세계를 쟁쟁히 울리는 것이다.

眞如有性能起念(壇經)
진여유성능기념
참다운 성품이 있기 때문에 능히 생각을 일으킨다
성품 자리는 원래 티끌 하나 없이 텅 빈 그것이나 그 가운데 일체 만법이 빈틈 하나 없이 갊아져 있어서 마음 한 번 내키면 일체 만법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을 운전해 나가는 것이다.

念若住卽名繫縛(六祖)
염약주즉명계박
생각이 만일 주착 되면 바로 계박이라 하는 것이다 자칫 한 생각만 어디에 주착 되면 그놈에게 붙잡히고 매달려서 심신의 자유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속박인 것이다. 그러므로 수양력을 쌓아 정력을 얻어서 어떠한 경계에도 적연부동이 되어야 비로소 해탈이라 하겠다.

心旣無隨處解脫(臨濟)
심기무수처해탈
마음이 벌써 끌리는 데가 없으면 해탈이다
마음이 끌리는 데가 없고 보면 마음이 구애되지 않아서 심신 작용이 자유롭게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해탈이다. 해탈이 다른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나 어떠한 장소에 끌리지 않고 자유자재함을 이른다.

一切皆空心淸淨(黃蘗)
일체개공심청정
일체가 다 비니 마음이 깨끗해지고 시비 선악간 일체 마음을 다 비어 버리고 나니 맘에 무엇이 끼고 섞인 것도 없고 얼룩진 것이 없이 맑고 깨끗하기만 하다.

十方常照性圓明(臨濟)
시방상조성원명
시방 세계가 항상 비치니 자성이 두렷이 밝은 탓이다
시방 세계가 항상 눈앞에 환히 비치게 되는 것은 이것이 자성이 두렷이 밝아진 까닭이다.

虛明自照心不勞(信心銘)
허명자조심불로
환히 밝게 스스로 비치니 마음이 수고롭지 않으며
수도 정진해서 자성 광명이 솟구쳐서 천만 사리가 막힘이 없이 눈앞에 저절로 환히 비쳐서 무불통지가 되니 모든 사리 면에 있어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연구를 할 필요나 여지가 없게 되니 마음이 하나도 수고로울 것이 없다.

逈然獨脫不拘物(臨濟)
형연독탈불구물
형연이 홀로 해탈하니 물건에 구애되지 않으며 오욕 칠정으로 물든 세속의 티끌의 속박에서 훨씬 멀리 벗어나서 유유자적하고 초탈하고 보니 세상 물질에는 아무런 구애가 없다.

但盡凡情無聖解(天皇悟)
단진범정무성해
다만 범부의 정취만 없애고 성인이라는 견해는 지니지 말라
범부를 여윈 부처는 없다. 범부가 깨쳐서 부처가 된다. 그러므로 범부니 부처니 하는 차별하는 생각과 현애상을 지닐 필요는 없다. 다만 세간에 있어서의 범부의 정취만 씻어 버리고 청정 일념에 주하게 되면 거기에서 초범입성(超凡入聖)이 되는 것이다.

惟息諸見不求眞(信心銘)
유식제견불구진
오직 모든 견해만 쉴 뿐 참은 구하지 알라
구도를 하자는 데는 제일 먼저 자기의 망령된 견해를 다 놓아 버리고, 다음에 참 도를 구한다는 생각마저 버려라. 그러면 자연히 진여자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一切法皆是佛法(金剛經)
일체법개시불법
일체의 법이 다 이 부처님 법이니라
일체 법이 다 깨치는 일이며 일체 만법이 다 마음의 화현이니 이것이 바로 자성불을 깨치게 되는 각성(覺性)이다. 그러므로 일체 만법이 불법(佛法) 아닌 것이 없다.

一切名皆是心名(馬祖)
일체명개심명
일체 이름들이 다 이 마음의 이름인 것이다
우주의 일체 만물이 각자 이름을 지니고 생겨난 물건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모두가 생겨난 후 사람 마음으로 지은 이름들인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도 또한 도덕경에 이른바 명가명(名可名)이면 비상명(非常名)이란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但有劍斬阿賴識(大慧)
단유검참아뢰식
다만 칼을 지니고 아뢰야식을 베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육근 육경 육식, 이 십팔 아뢰야식이 모든 번뇌 망상의 원인이 되는 것이며, 또는 모든 번뇌 망상은 모든 죄고의 씨가 되는 것이니, 이것을 근본적으로 따진다면 이 아뢰야식이 들어서 우리를 죄고에 몰아넣는 큰 도적이고 보니, 우리가 죄고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칼을 지니고 이 도적의 목부터 베어 버려야 하겠다.

實無法發菩提心(金剛經)
실무법발보리심
실은 법이 없어야 보리심이 발하는 것이며
자성 본래에는 한 법도 없이 깨끗이 비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를 증득하여 법의 근원을 거둬 버리면 그것이 바로 청정 보리심인 것이다.

無念三昧卽見性(六祖)
무념삼매즉견성
무념 삼매가 바로 견성인 것이다
자성 본래에는 아무런 분별심이 없이 적적한 것이다. 일체 사려를 다 놓아 버리고 무념에 들면 이것이 곧 견성이다.

不得一法是傳心(黃蘗)
부득일법시전심
한 법도 얻을 것 없는 것이 이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법이란 사사로이 주고받을 수 없는 것이고 얻었다 하면 법이 아닌 것이고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49년간 설한 법도 "나는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노라" 하셨으니 오직 이심전심으로 주고받는 것이다.

無心訣 終

한 스님이 수행하면서
암자 문에다가 '마음'이라고 써 놓고
창에도 벽에도 모두 '마음'이라고 써두었다.

법안스님이 이를 듣고 말씀하셨다.

"문에다가는 다만 '문'이라고 쓰고,
창에는 '창' 벽에는 '벽'이라고만 쓰면 될 것을..."

PEACE BE WITH YOU

평안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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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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