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이야기 2007. 1. 19. 11:57




두 갈래 길
/ 정채봉

어린 거미는 우선 줄을 바람에 날렸다.

드디어 바람이 불어
줄을 건너 나뭇가지에 붙여주자
어린 거미는 본격적으로 그물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짜보는 것이라
어린 거미의 그물은 한쪽으로 치우쳤고
너무 엉성하였다.

이때 솔가지 위에 나와 있던 왕거미가
어린 거미를 불렀다.
"꼬마야, 네 그물이 잘 짜졌다고 생각하느냐?"

어린 거미가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하지만 저기 저 아카시아 나무에
쳐놓은 가시거미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참나무가지에 쳐 놓은 저 그물과 비교하면?"

"저건 무당거미가 짠 것이 아닌가요?
무당거미는 최고의 그물을 짜는 선수인걸요."

왕거미가 어린 거미 가까이로 훌쩍 건너왔다.
"꼬마야, 그물을 짤 바에야 최고의 그물을 짜야지.
어중간하게 일을 했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란다."

어린 거미가 대꾸했다.
"사람들 사이에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려고 하다가는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지 않던가요?"

"네 이놈!"
왕거미가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은 형편을 비유한 것이지 능력을 비유한 것이 아니다.
최고의 기술이란 탁월한 장인정신으로 살아감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어린 거미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러면 우선 가시거미한테서 쉬운 것을 익혀서 쓰도록 한 다음에
나중에 무당거미를 찾아가 최고의 기술을 익히면 어떨까요?"

그러자 왕거미가 단호히 잘라서 말했다.
"아니다, 어설픈 것은 아예 배우지 않음만도 못하다.
후일 그 때를 빼는데도 배운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최고의 그물을 짜야최고의 거미가 되는 것이야."

이 말을 깊이 마음에 담은
어린 거미는 무당거미를 찾아 묵묵히 길을 떠났다.

- 정채봉 생각하는 동화 3

<향기 자욱> 중에서

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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