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신자유주의]파생상품 ‘시한폭탄’… 견제도 감시도 없었다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금융위기에는 벽이 없다-허술한 방어벽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우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극단적인 저금리정책으로 과잉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부동산 거품이 광범위하게 형성된 것이 위기의 기본적인 배경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단기금융수익성에 혈안이 된 미국 투자은행들의 CEO들이 높은 차입비율에 기대어 위험천만한 파생상품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시적인 개별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이런 행태에 대해 제대로 견제와 감시를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의 투자은행들은 일반 상업은행에 적용되는 레버리지(차입) 비율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 대 1의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했다. 과연 이들은 이렇게 높은 레버리지를 이용하여 무엇을 했던 것일까?

이들은 부동산담보대출채권을 증권화하여 새롭게 만든 부동산담보부증권(RMBS), 이 부동산담보부증권에 여러 가지 다른 채권(학자금대출·기업대출·카드론·자동차할부대출 등)을 혼합하여 리스크와 수익의 조합을 기준으로 조성한 다양한 형태의 부채담보부증권(CDO), 그리고 CDO 등의 디폴트 리스크(부도위험)에 대비하여 일정한 보험료를 지불하면 원금을 보전해 주는 보증보험계약의 일종인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의 거래에 뛰어들어 고수익을 추구했다.

그 결과 특히 위험이 아주 높은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가 크게 성행했다. 2007년 2·4분기에 무려 62조1732억달러에 달했던 명목상의 CDS 계약 잔액이 2000년에는 아예 제로였던데서 알 수 있듯이 CDS는 지난 8~9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오죽했으면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신용파생상품을 가리켜 지난 1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금융혁신이라고 했을까.

하지만 이렇게 급팽창하는 CDS 시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내재해 있었다. 우선 증권거래 규제를 총괄하고 있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이 2008년 10월23일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 공청회에서 한 증언이 문제의 핵심을 잘 말해 준다.

콕스 위원장은 CDS 시장에는 규제감독기관이 없고 시장형 금융에서 요구되는 최소한의 정보공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나아가 그는 CDS 거래에서는 현물증권을 보유할 필요가 없어 CDS 거래가 일종의 공매도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콕스 위원장은 CDS에 대한 규제권한을 SEC에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해 줄 것을 의회에 요구했다.

지난 몇 년간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투자은행들은 CDO를 판매함과 동시에 CDO의 디폴트 리스크에 대한 보험 상품인 CDS를 동시에 판매했다. CDO의 디폴트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가들은 리먼브라더스로부터 CDO를 매입함과 동시에 리먼에 이에 대한 보험료인 CDS프리미엄을 지불했다. 문제는 CDO의 디폴트 리스크가 빈발하면 CDS를 판매했던 투자은행이나 AIG 같은 보험회사들에 대해 CDS 계약이행요구가 쇄도하게 될 때 이에 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CDS 판매자인 투자은행이나 보험회사들에 대해 보증에 필요한 준비금규제가 전혀 없어 CDS 판매자가 보증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CDS 거래의 대부분이 장외거래여서 일단 커다란 디폴트 리스크나 거대 중개업자가 파산되면 결제 및 청산에 복잡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해 9월처럼 주요 거대 CDS 판매자인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AIG의 부실이 커져 ‘계약 상대방의 리스크’가 커지면, 결제 및 청산 리스크를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이 계약 상대의 리스크에 더 민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난해 9월 말 CDS 스프레드가 급속히 상승했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신용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이렇게 허술해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1990년대 이후 파생상품거래량이 크게 증가하여 그 위험성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린스펀 FRB,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 레빗 증권거래위원장 등은 오히려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완화했다. 당시 FRB의 한 이사가 그런스펀 주도의 파생상품 규제완화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와 이견을 제출했지만 그린스펀은 그의 충고와 제안을 철저하게 무시했다. 당시 상품선물거래위원장만 CDS 거래에 대한 공적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린스펀과 루빈에 밀려 이렇다할 만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런 역학 구도에서 나온 파생상품거래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법이 바로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이다.

실제 이 법의 제정으로 CDS와 같은 고위험 신용파생상품이 아무런 규제 없이 거래될 수 있게 되었다. 애시당초 이 법은 업계의 자율규제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최근까지 드러난 것처럼 단기고수익창출이 지상의 목표인 업계에서 자율규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했다.

지난해 9월 말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결과적으로 리먼브라더스를 제외한 4대 투자은행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이 모두 FRB로 이양됐다. 이로써 금융감독기관으로서 FRB의 지위가 이전보다 더 공고해졌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은행지주회사에 편입된 증권자회사에 대한 규제감독권한은 여전히 SEC에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때문에 향후 미국의 금융감독체제가 얼마나 잘 작동할 수 있을지는 FRB와 SEC가 얼마나 서로 긴밀한 협조 관계하에서 거대 금융기관들을 효율적으로 감독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무기력하고 초라한 위상을 여실히 드러낸 SEC가 어떻게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할 것인지가 아주 중요하다. 우선 SEC가 CDS 거래에 대한 규제권한을 확보할 수 있을지, CDS 거래의 중앙결제기관을 창설할 수 있을지 등에 대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SEC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통합하여 증권·파생상품거래업무와 행위규제의 책임당국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바로 이 문제가 버락 오바마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과제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SEC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주어질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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