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서 2020. 6. 18. 12:11

The Book of Wisdom

 

Chapter #21

Chapter title: Vagabonds of the Soul

그대 영혼의 방랑자들이여

3 March 1979 am in Buddha Hall

Archive code: 7903030

Short Title: WISDOM21

Audio: Yes

Video: No

Length: 98 mins

 

평역 :푸른글

 

TRAIN IMPARTIALLY IN EVERY AREA;

IT IS IMPORTANT TO HAVE TRAINED DEEPLY AND PERVASIVELY IN EVERYTHING.

(열린 마음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공평하게 수련하라.

모든 것에 대해 광범위하고 깊게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ALWAYS MEDITATE ON SPECIFIC OBJECTS.

항상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명상하라.

YOU SHOULD HAVE NO CONCERN FOR OTHER FACTORS.

그 외에 다른 것들에는 일체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한다.

THEREFORE, APPLY YOURSELF TO IMPORTANT MATTERS.

그러므로 중요한 문제에 자기 자신을 던져 넣어라.

DON'T DO THINGS BACKWARDS.

일을 거꾸로 하지 말라.

DON'T VACILLATE.

흔들리거나 망설이지 말라.

TRAIN AS THOUGH CUT OFF.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처럼 수련하라.

 

Once a jaina monk came to see me. He asked, "Is hell real? Is there really a hell?"

Instead of answering him, I asked him, "And where do you think you are living?"

언젠가 자이나교 승려 한사람이 와서 내게 물었다.

 “지옥이 진짜 있나요? 정말 지옥이 있을까요?” 나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Man lives in hell, because man is upside down.

You need not go to some stupid yoga teacher to learn the headstand posture,

because you are already doing it.

Everything is in the wrong order.

사람들은 지옥에 살고 있다.

전도(顚倒)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지옥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배우기 위해 일부러 요가 선생을 찾아갈 필요가 없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순서가 틀려있다.

 

For centuries you have been messed up; a chaos has been created in you instead of a cosmos.

You are just a kind of madness.

Whatever you think is normal is not normal at all.

It appears normal, because you have lived with these people

from your very childhood and you have started thinking

that these are the only people, so they must be normal.

수세기 동안 그대는 혼란에 빠져있었고, 그대의 내면에는 우주적 질서대신 혼돈이 생겨났다.

그대는 일종의 미치광이인 것이다.

그대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혀 정상적이지 않다.

그것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대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고,

삶의 첫 단추부터

이런 사람들만 정상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It is as if one was born in a madhouse

and from the very beginning was acquainted only with mad people; he will think them normal.

In fact, if he ever comes across somebody who is sane, he will be very puzzled,

he will not be able to believe his own eyes. He will think this man has gone crazy.

그것은 마치 정신병원에서 태어나서 처음부터 미친 사람들만 보며 자란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렇게 자란 사람에게는 미친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제정신인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는 매우 어리둥절하여,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제정신인 사람을 오히려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다.

 

Man is a chaos.

Let this idea sink deep into your heart,

because only then the desire to create a cosmos out of this chaos arises.

The moment you realize that you are standing on your head, a great moment has arrived.

Now you cannot go on standing on your head any more:

you have to do something, it is inevitable.

You have to act - and that very act becomes religion.

인간은 혼돈이다.

이 생각을 가슴 깊이 새겨두라.

그래야만 이 혼돈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갈망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전도(顚倒)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위대한 순간이 도래한다.

그러면 이제 그대는 그런 상태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불가피하게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그대는 바로서기 위한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바로 그 행동이 종교가 된다.

 

Religion is against society, because society lives on this so-called normal madness of people. Society wants people to be abnormal;

only then can they be exploited, only then can they be reduced into machines,

only then can they be reduced to slaves - and happily, and without any revolt.

종교는 사회의 반대편에 서있다.

왜냐하면 사회는 일종의 정상적인 광기에 기대어 유지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사회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사람들을 저항 없이 부려먹을 수 있고, 기계로 전락하게 할 수 있고,

노예로 몰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행복하게.

 

For thousands of years, man has lived in an imprisoned state.

Those prisons have been given beautiful names:

you call them churches, religions, ideologies.

Somebody lives in a Catholic prison and somebody lives in a communist prison,

and both go on bragging about their prison, that their prison is far better.

But any person who lives through some ideology is a prisoner,

because every ideology narrows down your consciousness,

becomes chains on your being.

Anybody who belongs to any crowd out of fear, out of conditioning, out of a kind of hypnosis,

is not truly a man, is not yet born.

The opportunity has been given to him, but he is wasting it.

수천 년 동안 인간은 감옥의 죄수로서 살아왔다.

그 감옥은 아름다운 이름이 붙여졌고, 사람들은 그것을 교회, 종교,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은 카톨릭 감옥에서 살아가고 있고

어떤 사람은 공산주의 감옥에서 살고 있으면서 모두들 자기 감옥이 훨씬 낫다고 허풍을 떤다.

하지만 어떤 이데올로기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죄수일 수밖에 없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의식을 편협하게 만들고, 인간 존재에 대한 쇠사슬이 되기 때문이다.

두려움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일종의 최면으로 인해, 어떤 무리에 속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인간이라 할 수도 없고

더 나아가 태어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지만, 그는 헛되이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You have been taught values which are not really values;

you have been taught things which are basically poisonous.

For example, you have been told not to love yourself,

and you have been told so many times that it looks like a simple fact, truth.

But a man who Is incapable of loving himself will be incapable of loving anybody else.

The man who cannot love himself cannot love at all.

그대들은 지금까지 진정한 가치가 아닌 허위의 가치관을 배워왔고,

기본적으로 독에 물든 생각들에 길들여져 있다.

예를 들면, 그대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어왔고,

너무 자주 되풀이하여 들었기 때문에 이제 그 말은 당연한 사실이고 진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타인을 전혀 사랑할 수 없다.

 

You have been told to be altruistic and never selfish.

And it looks so beautiful - but it only looks beautiful; it is destroying your very roots.

Only a really selfish person can be altruistic,

because one who is not rooted in his self, is not selfish, will not bother about anybody else.

If he cannot care for himself, how can he care for anybody else?

He is suicidal; naturally he will become murderous.

또한 그대들은 이타적이어야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면 안 된다는 말을 늘 들어왔다.

그것은 매우 아름다워 보이지만, 겉으로만 단지 그럴 뿐이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은 그대를 뿌리 채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진정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만이 이타적일 수 있기 때문이며,

자기 자신에 뿌리내리지 못한 자기중심을 찾지 못한 사람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보살필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기에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해서도 절망적인 인간이 될 것이다.

 

Your whole society up to now has been a society of murderers.

A few people commit suicide; they become saints.

A few more go on committing murder; they become great politicians, great leaders

- Genghis Khan, Nadir Shah, Tamerlane, Alexander, Napoleon, Adolf Hitler, Stalin, Mao.

But both are neurotic, both are unhealthy.

우리가 살아온 사회는 지금까지 살인자들의 사회였다.

어떤 사람은 자살을 하고서 성자가 된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살인을 좀 더 저지른다.

그래서 그들은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지도자가 된다.

칭기즈칸, 나디르 샤, 태멀레인, 알렉산더, 나폴레옹, 아돌프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뚱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신경과민이고, 건강하지 못하다.

 

You have to be taught new values.

Atisha's sutras will help you immensely.

He is really a revolutionary, a really religious man

- a man who knows, not through scriptures but by his own experience;

a man who has looked deep into the misery of man,

a man who is really so full of compassion that he wants to help,

to be of some help to the suffering humanity.

And the suffering humanity is not helped by creating more hospitals

or by making more people educated.

The suffering humanity can be helped only by giving it a new soul.

그대는 새로운 가치관을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티샤의 경구는 아주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진정한 혁명가이고, 진정한 종교인이다.

그는 경전을 지식을 주워 모아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험에 의해 직접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깊이 들여다보았고,

진정한 자비심으로 가득하여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도우려는 사람이다.

더 많은 병원을 세우거나 더 많은 사람들을 교육시킨다고 해서

고통의 바다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영혼을 주어져야만 사람들은 비로소 고통의 바다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People like Mother Teresa of Calcutta are simply serving the status quo.

That's why they are respected by the status quo.

They are given gold medals, prizes, awards, and the society thinks

Mother Teresa is the symbol of real saint-hoodness.

It is not so; she is simply in the service of a rotten society.

Of course the rotten society respects her.

She is not a revolutionary, she is not a religious person.

사람들은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 수녀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저 현상유지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한다.

현상유지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메달이 주어지고 표창장이 주어지고 상이 주어진다.

사회는 마더 테레사 수녀가 진정한 성인(聖人)로서 숭고함의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는 단지 썩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썩은 사회는 그녀를 존경하지만, 그녀는 혁명적인 사람도 종교적인 사람도 아니다.

 

And this is something to be understood: society respects only those saints

who are not really sages but are agents

- agents who help the society to continue as it is, agents of the establishment.

이것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사회는 언제나 진정 성인(聖人)이 아니라 그들의 대리인에 불과한 성자(聖者)들만을 존경한다.

즉, 기득권층의 대리인으로 사회가 지금 있는 그대로 지속하도록 돕는

그런 사람만을 사회는 존경하는 것이다.

 

Atisha is not for the establishment.

He wants to create a new man, a new humanity, as always buddhas have dreamed about.

Their dreams remain yet unfulfilled.

Here I am, again dreaming a great dream of giving birth to a new man.

You are my hope, in the same way Atisha had hoped with his own disciples.

These sutras were not written as a book,

these sutras were given to his disciples to meditate on.

아티샤는 기득권층을 지지하지 않는다.

아티샤는 붓다들이 늘 꿈꿔왔던 것처럼 새로운 인간,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기를 바란다.

붓다들의 꿈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나는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라는 큰 꿈을 다시 꾸고 있다.

아티샤가 자신과 함께한 제자들에게 희망을 걸었던 것처럼 그대들은 나의 희망이다.

원래 이 경구(經口)들은 책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명상하도록 전한 것이다.

 

 

The first sutra:

첫 번째 경구

TRAIN IMPARTIALLY IN EVERY AREA; IT IS IMPORTANT TO HAVE TRAINED

DEEPLY AND PERVASIVELY IN EVERYTHING.

(열린 마음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공평하게 수련하라.

모든 것에 대해 광범위하고 깊게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The first thing is impartiality:

one should be unprejudiced, and nobody is unprejudiced.

And that is a basic requirement to grow into a greater vision.

To come out of the prisons, the first thing is to drop prejudices

- prejudices called Hinduism, prejudices called Mohammedanism,

prejudices called Christianity.

One has to drop all prejudices.

How can you ever know truth if you have already decided what it is?

If you are already functioning from a conclusion,

you will never arrive to truth - never! It is impossible.

첫 번째는 공평함이다.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미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편견을 갖지 않는 것, 이것이 더 큰 통찰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다.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힌두교라고 불리는 편견,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편견,

불교, 기독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편견을 먼저 버려야 한다.

사람은 모든 편견을 버려야 한다.

편견은 진리가 무엇인가를 이미 정해 놓았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이미 정해 놓고 있다면 그런 상태에서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렇게 이미 결론을 장만해 놓은 상태에서 출발한다면

그대는 결코 진리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역자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毫釐有差하면 天地懸隔하나니 欲得現前이어든 莫存順逆하라. 違順相爭이 是爲心病이니.

The Great Way is not difficult for those who have no preferences.

When love and hate are both absent, everything becomes clear and undisguised.

Make the smallest distinction, however, and heaven and earth are set infinitely apart.

If you wish to see the truth, then hold no opinion for or against.

The struggle of what one likes and what one dislikes is the disease of the mind.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리라.

하지만 털끝만큼이라도 구별이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어긋남과 따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Don't start by a priori assumptions, don't start by any belief.

Then only are you a true seeker.

But everybody starts by belief - somebody believes in The Bible,

somebody else in the Koran; somebody believes in the Gita, and somebody in Dhammapada.

And they start by belief.

선험적인 전제를 가지고도, 어떤 믿음으로도 출발하지 마라.

전제나 믿음이 없을 때 그대는 진정한 구도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출발한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 성경을 믿고, 어떤 사람은 코란을, 바가바드 기타를 믿고,

어떤 사람은 법구경을 믿는다.

그들은 믿음으로서 출발한다.

 

Belief means you don't know, still you have taken something for granted.

Now your whole effort will be to prove it right, it will become your ego trip.

Each belief becomes an ego trip, you have to prove it right.

If it is wrong, then you are wrong; if it is right, then you are right.

And every person is nothing but a bagful of beliefs.

믿음이란

그대가 모르지만, 직접 알아보는 대신 무언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제 그렇게 믿음을 갖게 되면

그대는 자신의 믿음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고,

그 노력은 자아도취에 빠진 그대의 에고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각자의 믿음은 자아도취 여행이 되고,

그대는 그 에고 여행이 옳음을 스스로 증명해야만 한다.

만일 그 믿음이 틀리다면 그대가 틀린 것이고, 그 믿음이 옳다면 그대가 옳은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란

모두 저마다 한 자루씩의 믿음들로 가득 찬 자루포대일 뿐이다.

 

Remember, all beliefs are stupid.

I am not saying that those beliefs are basically untrue

- they may not be, they may be - but to believe is stupid.

To know is intelligent.

It may be that when you come to know, it may be the same thing

that you were told by others to believe; but still to believe in it is wrong, and to know it, right

- because once you believe in something that you have not known,

you have already started gathering around yourself a darkness

which will not help you to know, to see.

You are already becoming knowledgeable.

And knowing happens to those who are not knowledgeable, but intelligent.

모든 믿음은 어리석다는 것을 기억하라.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든 믿음이 기본적으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그대가 지닌 믿음들이 근본적으로 진리일수도 있고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직접 알아내는 것이 지혜롭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 스스로 알아낸 것이 어느 누군가가 믿으라고 했던 것과 같을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믿는다는 것은 잘못이고 직접 알아내는 것이 옳다.

그것은 일단 알지 못하는 것을 그대가 한번 믿어버리면,

직접 보고 아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두움을

그대 주변에 모아들이기 시작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미 지식적으로 되어버린다.

그리고 진정한 앎은 지식적인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에게 일어난다.

 

역자주)

入此門內莫存知解 입차문내막존지해

無解空器大道成滿 무해공기대도성만

이 문에 들어오면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풀이하는 마음 없는 공의 그릇이라야 큰 도를 이루리라.

 

Knowing happens to those eyes which are absolutely without the dust of knowledge.

The first thing Atisha says:

Be impartial, start without any conclusion, start without any a priori belief.

Start existentially, not intellectually; these are two different dimensions,

not only different but diametrically opposite.

진정한 앎은 지식의 먼지가 전혀 없는 눈을 가진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아티샤가 첫 번째로 말하는 바는

어떠한 결론도, 그 어떤 선험적인 믿음도 없는 공정한 상태에서 시작하라는 것이다.

지적인 시작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출발하라.

지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은 차원이 다를 뿐 아니라

전혀 180도로 다른 반대되는 성질의 것이다.

 

Somebody can start his journey into love by studying about love,

by going to the library, by looking in the Encyclopedia Britannica to learn what love is.

This is an intellectual inquiry.

He may gather much information, he may write a treatise,

and some foolish university may give him a Ph.D.

but he knows nothing of love. Whatsoever he is writing is only intellectual, it is not experiential.

And if it is not experiential, it is not true.

사랑이 무엇인지 배우기 위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찾아보고 사전을 들쳐보며

사랑에 대한 지식을 끌어 모으는 방법으로 사랑에 대한 여행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지적 탐구이다.

사랑에 대한 지식을 많이 모아서 논문을 쓰고

어느 바보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가 사랑을 안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에 대해 그가 글로 쓰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지적인 것에 불과하고

그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Truth is an experience, not a belief. Truth never comes by studying about it:

truth has to be encountered, truth has to be faced.

The person who studies about love is like the person who studies about the Himalayas

by looking at the map of the mountains.

The map is not the mountain!

And if you start believing in the map, you will go on missing the mountain.

If you become too much obsessed with the map,

the mountain may be there just in front of you,

but still you will not be able to see it.

진리는 믿음이 아니라 체험이다.

진리는 절대로 진리에 대해 공부한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마주쳐서 부딪혀 알아내야만 한다.

사랑에 대해 공부하는 사람은

그 산에 대한 지도로 히말라야 산을 공부하는 사람과 같다.

지도는 산이 아니다.

그리고 그대가 일단 지도를 믿는 방법으로 시작하면 그대는 산을 계속 놓칠 것이다.

그대가 믿음이라는 지도에 매달리다 보면,

깨달음의 산이 바로 그대 눈앞에 있어도 그대는 그 산을 못 보게 될 것이다.

 

And that's how it is. The mountain is in front of you, but your eyes are full of maps

- maps of the same mountain, maps about the same mountain,

made by different explorers.

Somebody has climbed the mountain from the north side, somebody from the east.

They have made different maps: Koran, Bible, Gita - different maps of the same truth.

But you are too full of the maps, too burdened by their weight;

you cannot move even an inch.

You cannot see the mountain just standing in front of you,

its virgin snow peaks shining like gold in the morning sun.

You don't have the eyes to see it.

일이란 그런 식인 것이다.

산이 바로 그대 눈앞에 있어도,

그대의 눈은 다른 탐험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그 산과 그 산에 대한 지도들로만 가득 차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산을 북쪽 벽으로 등반해 올랐고 어떤 사람은 동쪽 벽으로 등반해 올랐다.

그래서 그들은 그린 지도는

성경이나 바가바드기타나 코란처럼 모두 제각각 다르다.

같은 진리에 다른 지도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대는 생각이 온통 그 지도들로만 가득 차 있어서,

그 무게에 짓눌려서 단 한 걸음도 산을 향해 나아갈 수가 없다.

그대는 아침 햇살에 황금처럼 빛나는 처녀설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바로 앞에 두고서도 볼 수가 없게 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이다.

 

The prejudiced eye is blind, the heart full of conclusions is dead.

Too many a priori assumptions

and your intelligence starts losing its sharpness, its beauty, its intensity.

It becomes dull. Dull intelligence is what is called intellect.

Your so-called intelligentsia is not really intelligent, it is just intellectual.

Intellect is a corpse.

You can decorate it, you can decorate it with great pearls, diamonds, emeralds,

but still a corpse is a corpse.

편견으로 뒤덮인 시각은 장님의 시각이다.

결론들을 정해놓은 마음으로 내리는 결론은 이미 죽은 결론이다.

너무나 많은 선험적인 가정들인 그대의 알음알이로 인해

그대의 지혜는 그 자체의 강렬함과 예리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잃기 시작한다.

각성에 대해 둔감해진다. 우리가 말하는 지성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우둔해진 앎인 것이다.

그대들이 말하는 소위 지식인들이란 진정으로 앎에 이른 사람들이 아니다.

그저 지적일 뿐인 것이다. 지식이란 시체다.

그대가 온갖 보석으로 그 시체를 장식한다 해도 시체는 여전히 시체일 뿐이다.

 

 

To be alive is a totally different matter. Intelligence is alive-ness;

it is spontaneity, it is openness, it is vulnerability, it is impartiality,

it is the courage to function without conclusions.

And why do I say it is a courage?

It is a courage because when you function out of a conclusion the conclusion protects you,

the conclusion gives you security, safety.

살아 존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진정한 앎은 살아있음이다.

자연스러움이며 열려있음이다. 상처받기 쉬움이며 공평함이다.

결론을 내림 없이 (머무름 없이) 행하여 나아가는 용기이다.

내가 왜 그것을 용기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그대가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그 결론에 따라 행하면 안전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역자주)

金剛經 四句偈

금강경 사구게

第五 如理實見分

凡所有相은 皆是虛妄이라 若見諸相이 非相이면 則見如來라

무릇, 모든 상(相)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일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니라.

第十 莊嚴淨土分

不應住色生心이며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이며 應無所住하야 而生其心이니라

색에 머무르는(집착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되며,

결코 성·향·미·촉·법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어서도 안되며,

마땅히 머무름이 없는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第二十六 法身非相分

若以 色見我커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은 行邪道라 不能見如來니라

만약 겉모양으로써 나를 보려하거나 목소리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니, 끝끝내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一切有爲法이 如夢幻泡影이며 如露亦如電이니 應作如是觀이니라

일체의 유위법은 꿈이요, 허깨비요, 물거품이요, 그림자같은 것이고.

이슬 같고 또 번개와도 같은 것이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볼지니라.

 

 

You know it well, you know how to come to it, you are very efficient with it.

To function without a conclusion is to function in innocence.

There is no security, you may go wrong, you may go astray.

그대는 결론을 잘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대는 행함에 있어 효율적이다.

하지만 이미 내려놓은 결론 없이 행해 나아간다는 것은 천진난만한 것이다.

그 행함에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틀릴 수도 있고 길을 잘못 들어 헤맬 수도 있는 것이다.

 

 

One who is ready to go on the exploration

called truth has to be ready also to commit many errors, mistakes, has to be able to risk.

One may go astray, but that is how one arrives.

Going many many times astray, one learns how not to go astray.

Committing many mistakes one learns what is a mistake, and how not to commit it.

Knowing what is error, one comes closer and closer to what is truth.

It is an individual exploration; you cannot depend on others' conclusions.

우리가 말하는 소위 진리를 탐구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많은 잘못과 실수 또한 저지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위험 또한 감수해야만 한다.

길을 잘못 들어 방황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황이 있어야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수없이 길을 잃고 방황하면서, 방황하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실수를 저질러 봄으로써 실수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우게 되고,

어떻게 하면 그런 실수를 다시 저지르지 않게 되는지도 배우게 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앎으로써,

진리가 무엇인가에 한걸음 한걸음씩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 진리의 탐구는 개인적인 자아의 탐구이므로

다른 사람의 결론에 의존할 수가 없는 것이다.

 

Also remember that this body is not the only body.

Many more you had before, and many more you are going to have in the future.

There is no hurry. Be patient, because hurry can only disturb things.

Hurry is not going to help, but hinder.

이 육체가 이번에 처음 갖는 육체가 아님을 기억하라.

그대는 이 육체 이전에도 태어난 적이 많았고,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에도 그보다 더 많이 수없이 태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뿐이므로 참고 기다려라.

서두름은 지름길이 아니라 장애가 된다.  

 

Hence Atisha says:

이런 이유로 아티샤는 말한다,

TRAIN IMPARTIALLY IN EVERY AREA; IT IS IMPORTANT TO HAVE TRAINED

DEEPLY AND PERVASIVELY IN EVERYTHING.

(열린 마음으로) 모든 분야에 걸쳐 공평하게 수련하라.

모든 것에 대해 광범위하고 깊게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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