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21. 11. 16. 17:39

우리가 진리라고 알고 있는 것을 엄격하게 우리 삶의 기초로 삼고, 아무리 큰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며 그 어떤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참고 견뎌야 한다. 사실상 어떤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가져서는 안 된다. 진리를 실천하는 자는 그 과정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법이다.



진정한 영적 혜안은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 믿음은 우리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다섯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로,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생명 전체를 위한 절대적이고 윤리적인 가치 안에서의 믿음이다. 그런 가치를 확고하게 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는 반면 그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잃는 것도 있다. 절대적인 윤리적 가치들은 믿음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상이 실제로 그것들을 받아들인 때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서는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고, 다른 곳에서는 윤리적 가치가 중요시되었지만 사람들은 수많은 예외를 만들어야 함을 느꼈다. 그러나 삶의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사실상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이가 승리하리라는 믿음에 대해 논리적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은 단지 믿음의 문제 일 수밖에 없다.

 

둘째로, 생명의 일치와 성스러움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을 현실에서 실천하기란 어렵다. 우리는 음식을 얻기 위해 동물을 죽이고, 무수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일상 생활에서 고차원적인 행동과 저차원적인 행동을 구분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하나이며 그 생명은 거룩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영적인 믿음은 죽음 이후의 생명 연속성에 대한 믿음이다. 생명은 죽음으로써 끝나지 않는다. 계속되는 생명의 본성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이다. 사람들은 사색을 한다. '생명은 물질적인지 비물질적인지, 형태가 있는지 없는지, 구체적인지 추상적인지.......' 생명이 형태가 있는지 없는지를 신념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이다. 지성은 우리가 의존하는 믿음을 넘어서서 거리를 둘 수 있다. 그러나 믿음 없이는 자신의 이성이 말하는 것만을 붙잡을 수 있다.

 

넷째는 행위의 열매에 대한 믿음이다. 생명이 언제 이 세상에 나타났는지, 또 언제 생명의 끝이 올는지 모른다. 만일 우리가 생명을 단지 태어남만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생명은 풀 수 없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을 생각한다면 이 문제들 중 많은 것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이 생명 너머에 과거도 미래도 없다면 '행위의 열매'라는 개념은 별로 주요하지 않을 것이다. 악한 행동의 열매는 악하고, 선한 행위의 열매는 반드시 선하다는 것이 성스러운 법칙이다. 이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라는 사실을 교육하기 위한 신의 계획이다. 즉 가시나무 씨를 심으면 가시나무를 거둬들이지 결코 망고를 얻지 못한다. 그러나 이 '행위(Karma)의 법칙'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있다. 내 행위의 열매는 반드시 거둬야 한다. 이번 생애에서가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라도 거두어야 한다. 이 행위의 법칙은 깨질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내 행위의 열매는 내가 얻고, 당신의 열매는 당신 홀로 수확하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어떤 행위의 열매는 개인적이지만 다른 것들은 공동으로 나눠진다. 다섯 명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면 그 행위의 악한 열매로 인해 다른 네 명의 가족 또한 고통을 받는다.
어떤 행위도 그에 따른 결과로 나타나는 열매의 경험 없이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인과의 법칙은 경직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 카르마의 원칙은 영혼 없는 형벌이 아니다. 만약 신께서 인간을 그 인과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를 원하신다면 그분은 인간이 올바르게 가도록 사랑으로 인도하시고 어떤 경우에는 자신의 법조차 잠시 미루어 놓으신다. 법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정죄할 수 있지만 왕은 사면을 해 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악한 행위의 열매를 경험해야 한다. 그러나 신께서 원하신다면 우리의 고통을 덜어주실 것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그러한 행위의 결과를 경험해야 하며 개인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감면되어질 수 있다.

 

다섯째 믿음은 이 우주는 합리적이고 지적인 목적에 의해 질서가 잡혀 있다는 신념이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신께서 스스로 이름을 붙이면서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나 또한 이름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과 내가 만들고 수행하는 작은 계획들 너머에 그것을 이끄는 목적이 있음을 믿는다. 우리는 창조의 전체 계획 중 어떤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는 관심 있는 작은 부분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창조주는 우리를 보다 큰 목적을 위해 만드셨고, 우리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우주에는 합리적인 목적이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본문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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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첫째 의무는 정신적인 자립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만약 완전한 자유를 지닌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학생이다. 믿음 없이는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는 것과 동등하게 지적인 자유를 가져야 한다.

 

둘째 의무는 자기 조절을 연습하는 것이다.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다. 학생은 반드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이는 자신의 몸과 충동, 그리고 정신을 조절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의무는 봉사에 헌신하는 것이다. 봉사 없는 지식은 성립될 수 없다. 노인들은 경험이 풍부하여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러므로 학생들은 노인이나 부모,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 그리고 사회를 섬기는 데 헌신해야 한다. 결코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긴다고 생가해서는 안 된다. 지식은 봉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넷째 의무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학생들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현대 세계의 모든 운동과 이데올로기를 공부해야 한다. 편협하고 제한된 생각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폭넓은 관점을 지녀야 한다.

 

내 삶의 여정과 내면의 의식이 받아들인 가르침과 인내를 숙고하면 인간의 모든 의무를 요약하는 다음의 구절들이 마음에 떠오른다.

 

진리를 따르라. 그리고 공부하고 가르쳐라.
고요함을 유지하라. 그리고 공부하고 가르쳐라.
감각을 정복하라. 그리고 공부하고 가르쳐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라. 그리고 공부하고 가르쳐라.

[본문 182p]

 


비노바 바베 글 김진 편역 <홀로 걸으라, 그대 가장 행복한 이여> 중에서
도서출판 예담 (2006)

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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