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21. 11. 16. 17:52

슬픔과 고통의 멍에를 저홀로 질때

누군들 방황하지 않고 길을 떠나랴.

 

소돔과 고모라는
서로 키스하는 두 창녀들처럼 강둑을 따라 누웠다.
남자들과 다른 남자들이, 여자들과 다른 여자들이,
남자들과 암말들이, 여자들과 황소들이 교미를 했다.
그들은 「삶의 나무」를 먹고 과식했으며,
「지혜의 나무」를 따먹고 과식했다.
성스러운 상들을 때려부순 그들은 그것이 바람만 가득함을 보았다.
신에게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온 그들은
「이 신은 두려움의 아버지가 아니라, 두려움의 아들이로다」라고 말하고는
공포를 잊었다.
도시의 네 성문에다 그들은 커다랗고 노란 글씨로
「이곳에는 하느님이 없다」라고 써놓았다.
「이곳에는 하느님이 없다」는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본능에 굴레가 없으며,
선에 대한 보상과 악에 대한 처벌도 없고,
은공과 수치와 정의도 없고,
우리들은 발정한 암컷 수컷 늑대들임을 의미한다.

 

나는 그리스도가 집도 없이 굶주려 방황하고.
위험에 처했으며,
이제는 그가 인간에게 구원을 받아야 할 차례라고 느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소박한 사람들처럼,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도록 하자.
세상의 기아와 포만, 환희와 고뇌......이 모든 것들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몇 번이고 나 자신에게 그렇게 다짐했지만
배고파 울고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조금씩 붕괴되어 갔다.
나는 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변화를 감동으로 체험했다.
처음 내 마음을 괴롭히던 것은 부끄러움이었으나
곧 그것은 공감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다른 사람의 괴로움이 곧 내 괴로움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나는 분노하고 정의를 갈망했다.
나는 책임을 느꼈다.
세계가 굶주리는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느꼈다.
부정의 죄는 나로 비롯된 것이며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본래의 길로 되돌아 왔을 때
나는 인간의 고통으로 마음이 가득 찼고,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란
오직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뿐임을 깨달았다.

 

우리들의 삶은 전체가 상승, 절벽, 고독이다.
우리들은 많은 친구 투쟁자들과, 많은 사상과, 거대한 일행과 함께 출발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올라가도 정상이 자꾸 움직여 자꾸 멀어지면
다른 투쟁자들과, 희망과, 사상은 숨이 차서
더 높이 올라갈 마음이나 능력이 없어져
우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움직이는 정상에서 눈을 떼지 않고 우리들만 남았다.
우리들은 교만이나,
언젠가는 정상이 가만히 있어서 우리들이 다다를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확신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그곳에 도달한다 할 지라도
그 높은 곳에서 행복과, 구원과, 천국을 찾으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우리들에게는 올라간다는 바로 그 행위가
행복이요, 구원이요, 천국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물리칠 수 없음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인간의 보람은 승리가 아니라
승리를 위한 투쟁에 있다.
더욱 어려운 이야기지만,
나는 또한 승리를 위한 투쟁에조차 보람이 있지 않음을 안다.
인간의 보람은 오직 한 가지,
어떤 보상도 받지 않으며 용감하게 살다가 죽는다는 데 있다.

 

어느날 밤 나는 신에게 물었다.
"하느님, 언제 사탄을 용서하시겠나이까?"
그러자 신께서 대답하셨다.
"그가 나를 용서할 때."
이해를 하겠는가?
언젠가, 누가, 신의 가장 훌륭한 동료가 누구냐고 물으면,
너는 사탄이라고 말해야 해.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고, 두 팔을 벌리고 기다려주는
탕자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아도,
너는 사탄이라고 말해야 해.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영혼의 자서전> 중에서
고려원 (198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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