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2021. 11. 16. 18:01

참된 예술과 저속한 예술


정신적인 활동을 도표로 나타내면 예각 삼각으로서 평면적으로는 세 변(邊)이 일정하지 않으며, 그 중에서 가장 좁은 각이 제일 위쪽에 위치한다. 변이 밑으로 내려올수록 폭과 깊이와 면적은 점점 더 커진다. 여기서 정점이 있는 곳은 오늘이고 저변은 내일이 된다.


말하자면 오늘에 있어서 정점부에서만 이해되어, 나머지 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는 허사(虛辭)인 것이 내일에는 제2변이 가지고 있는 삶에 대한 사상과 감정의 내용이 된다.

 

가장 높은 변의 정점에는 한 사람만이 외롭게 서 있다. 그리고 그의 기쁨에 찬 비젼(Vision)은 내적인 슬픔의 척도이다.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사람들에게서조차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그를 엉터리 아니면 미친 사람이라고 화를 내며 욕한다.

 

그리고 삼각형의 각 변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변의 한계를 넘어서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예언자이며, 그는 무거운 수레를 끌고서 전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근시안적인 예술가나 통속적인 목적으로 형안(炯眼)을 남용하여 전진운동을 늦추는 예술가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변의 대중들에게 충분히 이해되고 갈채를 받는다. 사람들은 적절한 정신적 만족에 굶주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만족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제공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적 만족을 얻기 위해서 아랫변의 대중들은 장차 열렬한 손길을 뻗칠 것이다.

 

어떤 예술가는 대중들의 저속한 요구에 아첨하는데 자기의 능력을 이용한다. 즉 예술형식을 빌어서 불순한 내용을 나타내고, 취약요소를 끌어들여 나쁜 요소와 함께 섞고, 인간을 기만하고 또 인간으로 하여금 그들 자신을 기만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그들이 정신적 갈증을 느끼고 있다거나, 이 순수한 샘에서 그 갈증을 축일 수 있다는 확신을 자기들 스스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갖도록 한다. 이러한 예술은 전진적인 운동을 돕지 못한다. 오히려 앞으로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을 뒤로 잡아당기고 독을 널리 퍼뜨려서 그 운동을 방해한다.

 

예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없는 시대, 즉 참된 정신적 양식이 결여된 시대는 정신세계에서의 퇴보시대인 것이다. 심성은 삼각형의 높은 변에서 낮은 변으로 끊임없이 하강하며, 그 전체도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밑으로 내려가거나 후퇴하기도 한다.


벙어리와 장님과 같은 이런 시대의 인간들은 특수하고 두드러진 가치를 외적인 성공에 두게 된다. 그들은 물질적인 부를 얻으려고 애태우며, 육체를 위한 기술적 진보만을 위대한 일로 찬양한다. 참된 정신적 능력은 과소평가되고 무시되고 있다.

 

영혼에 굶주려 있는 사람과 앞을 내다보는 사람은 조롱거리가 되며 정신적으로 비정상의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혼수상태에 빠져들 수 없으며, 정신생활, 지식, 진보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끼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속된 물질주의를 구가하는 합창소리에 끼여 비참하고 서글픈 소리를 낸다. 정신적인 밤은 점점 깊게 깔려 이 놀란 영혼들은 더욱 회색빛이 된다. 그리하여 의혹과 공포에 시달려 약해진 이 영혼의 소유자들은 그들 주위를 감싸고 있는 이 점진적인 어둠보다는 차라리 갑작스럽게 칠흑처럼 어두워진 전락을 때때로 택하게 된다.

 

이와 같은 시대에 예술은 저급한 요구에 봉사하고, 결국 물질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된다. 그러한 예술은 천연 그대로의 생소재(生素材)에서 자기의 내용을 구한다. 왜냐하면 그 예술 은 정제(精製)한 소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고 이러나 저러나 여전히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오로지 그것을 재현하는 것만이 예술의 목적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무엇'을 표현했느냐 하는 문제는 없어지고, '어떻게' 표현했느냐 하는 문제만이 남는다. 말하자면 동일한 물질적 대상이 어떻게 예술가에 의해서 재현되는가 하는 방법만이 '신조'가 될 뿐이다.

 

예술은 그 정신을 잃고 있다. '어떻게'에 대한 추구는 계속된다. 예술은 특수화되고 오로지 예술가들에게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된다. 예술가들은 일반대중들이 그들의 작품에 대해 냉담한 것을 불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대의 예술가들은 대개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고, 다만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에, 즉 몇몇 그룹의 후견인들이나 감정가들 사이에서만 찬양 받기 때문에 외견상으로만 재능과 기술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예술에 도전하고, 그래서 쉽게 예술이 정복될 것으로 생각한다.


모든 예술센터에는 수 천명의 이와 같은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 중에 대다수는 가슴은 차갑고, 정신은 잠에 취한 채 아무런 흥미도 없이 수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면서 오로지 새로운 매너리즘만을 추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는 가운데 '경쟁'은 커지고, 성공을 위한 야만적인 전쟁은 더욱더 물질화 되어 간다. 작가와 작품에서 야기되는 이러한 예술적 혼란 속에서 우연하게 새로운 자기 길을 타개한 소수그룹은 그들이 승리한 영역에서 자기의 입장을 고수하여 성벽을 쌓아 올린다. 뒤에 남아 있는 대중들은 어리둥절해서 방관하고, 흥미를 잃고 외면해 버린다.


 

- 칸딘스키의 예술론

"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중에서

열화당 미술선서(悅話堂 美術選書,1979)

posted by 푸른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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