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論

Verses from the Centre

(The Philosophy of the Middle Way)
중도(中道)의 원리

Sanskrit: Mula madhyamaka karika.
Tibetan: dBu ma rtsa ba’i tshig le’ur byas pa shes rab ces bya ba.
by Nagarjuna
龍樹菩薩 造 梵志靑目 釋

Romanization and Literal English Translation
of the Tibetan Text
by
Stephen Batchelor
Sharpham College
April 2000

21. Investigation of Rising and Passing (Disappearance)
觀成壞品
生成과 壞滅에 대한 고찰

<해설>

이 장에서는 영원한 것으로 여겨지는 자아(atman)나

영혼(pudgala)의 이론에 의지하지 않는 윤회(samsara)나 인격체에 대해 설명한다.

1. Passing does not exist without or together with rising.

Rising does not exist without or together with passing.

離成及共成  是中無有壞
離壞及共壞  是中亦無成

소멸은 생성을 떠나거나 더불어 존재할 수 없고,
생성은 소멸을 떠나거나 소멸과 더불어 존재할 수 없다.

[The Sanskrit terms sambhava (‘byung ba/rising)

and vibhava (‘jig pa/passing) are related to bhava (dgnos po/thing);

also cf. svabhava and parabhava. So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would capture the play on the two words.

Not also that in verses 15-16 the Tib. ‘byung/’jig

does not translate sambhava/vibhava, but udaya/vyaya]

2. How can passing exist without rising?

Is there death without birth? There is no passing without rising.

若離於成者  云何而有壞
如離生有死  是事則不然

생성이 없다면 어떻게 소멸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탄생이 없다면 어떻게 죽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생성이 없다면 소멸은 있을 수 없다.

<해설>
여기서의 생성(sambhava)이란 의미는

한 삶에서 다른 삶으로 옮겨다니는 영원한 실재를 가지지 않는,

갖가지 요인에 의존한 한 인간의 태어남(janma)과 관련된 것으로,

죽음을 뜻하는 소멸(壞滅, marana) 역시 완전한 단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윤회과정에서의 탄생과 죽음을 뜻하는 것으로서,

탄생은 절대적인 시작이 아니며 죽음은 절대적인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게송에서는 태어남이 없는(vina) 죽음과

태어남이 있는(saha) 죽음 모두를 부정하고 있다.

3. How could passing exist together with rising?

Death does not exist at the same time as birth.

成壞共有者  云何有成壞
如世間生死  一時俱不然

소멸이 어떻게 생성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죽음은 태어남과 함께 발생하는 것인가?)
죽음이 삶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데.

4. How could rising exist without passing? Things are never not impermanent.

소멸이 없는 생성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태어남은 죽음과 함께 발생하는 것인가?)
존재자들이 결코 무상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데.

5. How could rising exist together with passing?

Birth does not exist at the same time as death.

若離於壞者  云何當有成
無常未曾有  不在諸法時

생성이 어떻게 소멸과 함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죽음과 다시 태어남 사이에는 불변의 관계가 존재하는가?)
태어남은 죽음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데.

6. How can those that are not established

either mutually together or not mutually together be established?

成壞共無成  離亦無有成
是二俱不可  云何當有成

이렇게 생성과 소멸이 상호간에 함께 성립하는 것도
상호간에 함께 성립하는 것도 아니라면,
어떻게 생성과 소멸이 성립될 수 있겠는가?

7. The finished does not rise; the unfinished too does not rise;

the finished does not pass; the unfinished too does not pass.

盡則無有成  不盡亦無成
盡則無有壞  不盡亦不壞

자성이 있는 경우에도 생성과 소멸은 존재할 수 없고,
자성이 없는 경우에도 생성과 소멸은 존재할 수 없다.

<해설>
자성적 존재는 존재자체에 생성과 소멸이 있을 수 없고,
자성이 없는 존재는 그 속성이 허무하므로
허무는 원인으로서 없어지지도 않고 결과로서 생겨나지도 않는다.
자성 없는 존재는 다만 인연에 의지하여 생성과 소멸 법을 따를 뿐이다.

8. Rising and passing do not exist without the existence of things.

Things do not exist without the existence of rising and passing.

若離於成壞  是亦無有法
若當離於法  亦無有成壞

생성과 파괴는 사물의 존재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존재자는 생성과 파괴의 존재성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해설>
존재를 떠나 생성과 파괴가 있을 수 없고,
생성과 파괴를 떠나 존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나라는 것이 없다면 삶과 죽음이 존재할 수 없으며
삶과 죽음은 나라는 독립된 실체가 있다는 것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9. Rising and passing are not possible for the empty;

rising, passing are not possible for the non-empty also.

若法性空者  誰當有成壞
若性不空者  亦無有成壞

자성이 없는, 공(空)한 것은 허무하므로
생성과 파괴가 가능하지 않고
자성(自性)이 있는, 공(空)하지 않은 것은
자성이 있어 상주일 것이므로 역시 생성과 파괴가 가능하지 않다.

10. Rising and passing cannot possibly be one;

rising and passing also cannot possibly be other.

成壞若一者  是事則不然
成壞若異者  是事亦不然

생성과 파괴는 같은 것일 수도 없고, 또한 다른 것 일 수도 없다.

生成과 壞滅이 동일하다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生滅과 壞滅이 상이하다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MKV 21.10)

<해설>
생과 멸은 상호간의 인연에 의지하여 출몰하는 다르면서도 같은 것(異而一)이다.

존재에는 생이 있기도 하고 멸이 있기도 하므로, 생과 멸은 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에 의하여 생겨난 존재는 멸에 의해 없어지므로,

생과 멸이 무관계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무지한 자는 생과 멸의 다른 측면만을 볼 뿐,

그것들이 하나가 되는 측면은 보지 못한다.

11. If you think that you can see rising and passing,

rising and passing are seen by delusion.

若謂以眼見  而有生滅者
則爲是癡妄  而見有生滅

만일 그대가 생성과 파괴를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대의 무지로 인한 환상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12. Things are not created from things; things are not created from nothing;

nothing is not created from nothing; nothing is not created from things.

從法不生法  亦不生非法
從非法不生  法及於非法

존재자는 존재자로부터 생겨날 수 없고,
비존재자로 부터도 생겨날 수 없다.
비존재자로부터 비존재자가 생겨날 수 없고
비존재자로부터 존재자가 생겨날 수도 없다.(MKV 21.12)

13. Things are not created from themselves, nor are they created from something else;

they are not created from [both] themselves and something else. How are they created?

法不從自生  亦不從他生
不從自他生  云何而有生

존재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타자(他者)로부터도 생겨날 수 없다.
존재자는 자신으로부터도 타자로부터도
그 외에 그 무엇으로부터도 생겨날 수 없다.
존재하고 있는 존재자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단 말인가?

14. If you assert the existence of things,

the views of eternalism and annihilationism will follow,

because things are permanent and impermanent.

若有所受法  卽墮於斷常
當知所受法  爲常爲無常

만일 자성을 가진 존재가 별도로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상주론(常見)이나 단멸론(斷見)의 견해가 뒤따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존재를 상주(常住)하는 것,
아니면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MS 21.14)

존재를 분별하여 인정하면 상주론이나 단절론에 빠지게 된다.
그 존재는 상주 아니면 단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설>
자성(自性)을 인정하게 되면 상주론에 떨어지는 것은 비교적 이해하기가 쉽지만,

단멸론 역시 자성을 인정할 때 야기되는 오류라는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소멸되는 것은 자성을 가진 것이다.

왜냐 하면 자성이 없이 연기적으로 생기(生起)하는 사물들은

생겨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기 때문이다.

인과 관계도 부단불상(不斷不常)이다.

예컨대 종자와 싹의 관계를 볼 때, 싹은 종자의 연속이 아니므로

상주도 아니지만, 종자를 매개로 상대적으로 성립하므로 단멸도 아닌 것이다.

이것을 바바비베카는 “종자가 멸해도 싹이 생기하기 때문에 단이 아니고,

싹이 생기해도 종자가 멸하기 때문에 상도 아니다.”고 말한다.

15. If you assert the existence of things,

eternalism and annihilationism will not be,

because the continuity of the rising and passing of cause-effect is becoming.

所有受法者  不墮於斷常
因果相續故  不斷亦不常

만일 자성을 가진 존재가 별도로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상주론(常見)이나 단멸론(斷見)의 견해는 성립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생은 원인과 결과의 생멸이 상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MS 21.15)

존재를 인정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단절도 없고 상주도 없다.
이 생(生)은 결과와 원인의 생멸의 상속이기 때문이다.

16. If the continuity of the rising and passing of cause-effect is becoming,

because what has passed will not be created again,

it will follow that the cause is annihilated.

若因果生滅  相續而不斷
滅更不生故  因卽爲斷滅

만일 이 생(生)이 원인과 결과의 생멸이 상속하는 것이라면,
소멸하는 것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에,
원인의 단멸이 있는 셈이 될 것이다. (MKV 21.16)

만일 저 생(生)이 결과와 원인의 생멸의 상속(相續)이라면,
없어진 것이 다시 생겨날 수 없으므로,
원인은 단멸이 되어 상속은 있을 수 없게 된다.

17. If things exist essentially,

it would be unreasonable [for them] to become nothing.

At the time of nirvana [they] would be annihilated,

because the continuity of becoming is totally pacified.

法住於自性  不應有有無
涅槃滅相續  則墮於斷滅

자성으로 실재하고 있는 것이
실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열반에 들 때 생의 상속이 멈추므로 斷滅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있어서 實在하는 것이 非實在로 되는 일은 없다.
만일 非實在로 된다면 열반할 때에 단절이 있게 되며,
생의 상속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18. If the end stops,

it is unreasonable for there to be a beginning of becoming.

When the end does not stop,

it is unreasonable for there to be a beginning of becoming.

若初有滅者  則無有後有
初有若不滅  亦無有後有

만일 최후의 생이 소멸한다면
최초의 생이 있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렇다면 無因이다]
최후의 생이 소멸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생이 있다는 것도 타당하지 않다.(MS 21.18)

(금세에 있어서) 최후의 생이 없어졌을 때에
(내세에 있어서) 최초의 생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생겨난다면 無因이 된다]
또 최후의 생이 아직 없어지지 않았는데
최초의 생이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일시에 二有가 있게 되기 때문이다]

19. If the beginning is created while the end is stopping,

the stopping would be one and the creating would be another.

若初有滅時  而後有生者
滅時是一有  生時是一有

만일 최후의 것이 소멸하고 있을 때 최초의 것이 생겨난다면,
하나는 소멸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겨나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MKV 21.19)

만일 최후의 것이 없어지고 있을 때에 최초의 것이 생겨난다면,
각각 자성이 있으므로 없어지고 있는 것이 하나이고,
생겨나고 있는 것이 다른 또 하나가 될 것이다.

20. If it is also unreasonable for stopping and creating to be together,

aren’t the aggregates that die also those that are created?

若言於生滅  而謂一時者
則於此陰死  卽於此陰生

만일 소멸하고 있는 것이 생겨나고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五陰에서 생겨난 것은
무엇이든 동시에 죽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MKV 21.20)

만일 또 없어지고 있는 것과
생겨나고 있는 것이 동시가 아니면서도
최후의 생이 없어지고 최초의 생이 생겨나는 것이라면
이 五陰에서 죽고 또한 이 五陰에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21. Likewise, if the continuity of becoming is not reasonable at any of the three times,

how can there be a continuity of becoming which isnon-existent in the three times?

三世中求有  相續不可得
若三世中無  何有有相續

그렇듯, 三時에 生의 相續은 타당하지 않다.
三時에 존재하지 않는데, 생의 상속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MKV 21.21)

이와 같이 三世를 통하여 生의 相續은 없다.
三世 속에 없다면 어찌 생의 상속이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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