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論

Verses from the Centre

(The Philosophy of the Middle Way)
중도(中道)의 원리

Sanskrit: Mula madhyamaka karika.
Tibetan: dBu ma rtsa ba’i tshig le’ur byas pa shes rab ces bya ba.
by Nagarjuna
龍樹菩薩 造 梵志靑目 釋

Romanization and Literal English Translation
of the Tibetan Text
by
Stephen Batchelor
Sharpham College
April 2000

18. Investigationof Self and Things (Self)
觀法品
自我에 대한 고찰

1.If the aggregates were self, it would be possessed of arising and decaying. If it were other than the aggregates, it would not have the characteristics of the aggregates.

若我是五陰  我卽爲生滅
若我異五陰  則非五陰相

만약 自我가 五蘊이라면, 그것은 生滅을 띠고 있는 것이 되리라. 만약 五蘊과 다르다면, 五蘊의 상을 띠지 않으리라.(MKV)
만약 자아[我, atman]가 심신의 여러 요소[五陰, skandha]와 같은 것이라면 그 자아는 生滅할 것이다. 만약 자아가 심신의 여러 요소와 다르다면 자아는 여러 요소의 특징[相, laksana]을 갖지 않을 것이다.(MS 18.1)

2. If the self did not exist, where could what is mine exist? In order to pacify self and what is mine, grasping I and grasping mine can exist no more.

若無有我者  何得有我所
滅我我所故  名得無我智

自我가 존재하지 않거늘, 어떻게 自我의 것이 존재하겠는가? 自我와 自我中心이 가라앉음으로 해서, 나의 것도 없어지고 나에 대한 생각도 없어진다.(MKV)
自我가 없는데 어찌 자아의 소유[我所, atmani]가 있을 것인가. 自我와 自我의 소유가 없으면 그는 자아 의식도 없고 소유 의식도 없는 자가 된다.(MS 18.2)

3. The one who does not grasp at me and mine likewise does not exist. Whoever sees the one who does not grasp at me and mine does not see.
[c-d are omitted on the grounds of their being a reiteration of a-b]

得無我智者  是則名實觀
得無我智者  是人爲希有

나의 것이 없고 나에 대한 생각이 없는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것이 없는 것과 나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MKV)
'나'라는 자아 의식과 내 것이라는 소유 의식도 없는 사람은 실재하지 않는다. 자아 의식과 소유 의식이 없는 사람이 실재한다고 보는 자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4. When one ceases thinking of inner and outer things as self and mine, clinging will come to a stop. Through that ceasing, birth will cease.

內外我我所  盡滅無有故
諸受卽爲滅  受滅則身滅

(自我의)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나의 것과 나라고 하는 것이 滅盡할 때, 取着이 소멸한다. 그것(取着)이 소멸함으로써 태어남이 滅盡한다.(MKV)
안으로나 밖으로나 '나[我, atman]'라는 생각이 없고 '나의 것[我所, atmani]'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집착은 없어질 것이요, [집착이] 없어진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생겨났던] 生도 없어질 것이다.(MS 18.4)

<해설>
五蘊이 있으므로 五蘊에 의존해서 <나>라고 할만한 존재가 있다. 또한 <나>가 있음으로 해서 五蘊은 五蘊이라고 불리게 된다. <나>를 떠난 五蘊도 없고, 五蘊을 떠난 <나>도 없다. 나와 五蘊은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다. 만약 내가 五蘊과 동일하다면 그 나는 五蘊으로서 自性을 갖고 生成消滅할 것이고, 다르다면 <나>는 五蘊과 독립적인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에 五蘊의 특성을 갖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5. Through the ceasing of action and affliction, there is freedom. Action and affliction [come] from thoughts and they from fixations. Fixations are stopped by emptiness.

業煩惱滅故  名之爲解脫
業煩惱非實  入空戱論滅

業과 번뇌가 滅盡하기에 解脫이다. 業과 번뇌는 分別에서, 分別은 戱論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戱論은 空性에서 소멸한다.(MKV)
업과 번뇌가 멸해서 없어지기 때문에 해탈이 있다. 업과 번뇌는 분별사고로부터 생긴다. 그런데 분별 사고는 형이상학적 논의[戱論]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희론은 공에서는 멸한다.(MS 18.5)
업과 번뇌가 말끔히 없어짐으로 인해 해탈이 있게 된다. 업과 번뇌는 사유 분별로부터 생겨난다. 그 사유 분별은 戱論으로부터 생겨난다. 그 戱論은 空에 들어감으로써 없어진다.

6. It is said that “there is a self,” but “non-self” too is taught. The buddhas also teach there is nothing which is “neither self nor non-self.”

諸佛或說我  或說於無我
諸法實相中  無我無非我

여러 붓다들은 自我라고도 설하고 無我라고도 설했다. 그렇지만, 自我이거나 無我인 어떤 것이라고는 설하지 않으셨다.(MKV)
모든 부처님은 '자아(atman)가 있다'고 가설하고, '무아이다'고도 설하며, 또 '아트만인 것도 없고, 무아인 것도 없다'고 설했다.(MS 18.6)
모든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의 생각에 맞추어 방편으로) 때로는 自我라는 것이 있다고 假說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自我라는 것은 없다고 敎示하시어, 自我가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고 無我라고도 하셨다. 또한 自我도 無我도 없다고 설하기도 하셨다.

[Tsongkhapa (325) cites the Kasyapaparvrtti as a source here]

7. That to which language refers is denied, because an object experienced by the mind is denied. The unborn and unceasing nature of reality is comparable to nirvana.

諸法實相者  心行言語斷
無生亦無滅  寂滅如涅槃

사유의 영역이 止滅할 때 지시 대상도 止滅한다. 法性은 발생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니, 실로 涅槃과 다름없는 것이다.(MKV)
마음의 경지가 멸했을 때는 언어의 대상도 사라진다. 진리는 불생불멸이며, 실로 열반과 같다.(MS 18.7)
그 경지는 마음이 부정된 상태에서 대상을 경험하므로 말로 표현되어질 수 없다. 사물의 참다운 본성은 열반과 같아서 생겨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

[Tsongkhapa (326) explains that c-d are an answer to the question implied in 5c-d, i.e. “how does emptiness stop fixations?”]

<해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8. Everything is real, not real; both real and not real; neither not real nor real: this is the teaching of the Buddha.

一切實非實  亦實亦非實
非實非非實  是名諸佛法

일체(一切)가 진실하다, 진실하지 않다, 진실하면서 진실하지 않다, 진실하지도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이 붓다의 말씀(가르침)이다.(MKV)
모든 것은 진실이다. 또는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하다. 진실인 것도 아니고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MS 18.8)

<해설>
세간의 관행상 진실이라고 인정되는 것을 부처님께서도 방편상 그대로 진실이라고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절대 진리의 입장에서 보면 세간의 관행상 진실은 진실이 아니다. 그리고 세간과 절대 진리의 두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진실이기도 하고 진실이 아니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네 번 계속 부정해 나가는 것을 四句分別 혹은 四句否定이라 한다.

9. Not known through others, peaceful, not fixed by fixations, without conceptual thought, without differentiation: these are the characteristics of suchness.

自知不隨他  寂滅無戱論
無異無分別  是則名實相

다른 사람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깨달으며, 寂靜하며, 戱論들에 의해 戱論되지 않으며, 分別이 없으며, 여러 가지 의미를 띠지 않는 것, 이것이 진리의 相이다.(MKV)
(참다운 도는) 다른 것에 의해 알려지는 것이 아니며, 寂靜하여 戱論에 의해 戱論되는 일이 없고, 분별을 떠나 있으며,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실상이다.(MS 18.9)
다른 것에 의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는 것이며[自知不隨他, apara-pratyaya], 적정(寂靜, santa)하며 온갖 희론(戱論, prapanca)에 의해서 희론되지 않고, 분별을 떠나 있으며[無分別, nir-vikalpa], 무차별적[無異, ananartham]이다. 이것이 진리의 실상(實相, tattvasya laksanam)이다.(MS 18.9)
(다른 실재에 의존[緣]하지 않으며, 적정하며, 개념의 장난[戱論]에 의해 개념화 되지 않으며, 분별이 없으며, 차별이 없다. 이것이 실재의 相이다.
自知하여 他에 緣由하여 알려지는 것이 아니며, 寂靜으로써 戱論됨이 없고, 思惟分別을 떠나있으며 차별이 없는 것, 이것이 實相(眞理, 道)의 특징이다.

<해설>
희론(戱論, prapanca)은 대상을 분별해서 거기에 언어와 의미를 부여하는 지적 작용을 말한다. 혹은 언어에 대응하는 실체 관념을 형성하는 전도된 인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예컨대 우리가 <나>라는 표현을 할 때 마치 그 지시어에 대응하는 어떤 영속적인 실체가 존재한다는 선입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것도 일종의 戱論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緣起的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상은 고착화와 실체화를 주된 특성으로 하는 언어적 틀에 잡히지 않는다. 사구부정(四句否定)은 眞如實相과 언어와의 괴리를 보여주는 예이다. 그러니까 戱論이 소멸한다는 것은 그러한 顚倒된 인식을 깨고 事物의 緣起的 性品, 혹은 空性을 봄을 의미한다.

10. Whatever arises dependent on something else is at that time neither that very thing nor other than it. Hence it is neither severed nor permanent.

若法從緣生  不卽不異因
是故名實相  不斷亦不常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의존하여[緣] 존재할 때에, 어떤 것은 어떤 것과 같은 것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斷滅한 것도 아니며 常住하는 것도 아니다.(MKV)
어떤 것에 의존해서[緣해서] 생기는 것은 그것과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그러므로 단절(斷)도 아니고 상주(常)도 아니다.(MS 18.10)
어떤 것이 다른 것으로 말미암아 생겨났을 경우에는 전자는 후자와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단멸(斷滅)도 아니고 상주(常住)도 아니다.

<해설>
여기서는 주체와 작용, 행위자와 행위의 관계를 예로 들었지만 확대하면 실체와 속성, 인식과 대상 등 질적 문제까지도 포함된다. 이들 양자의 같고 다름의 일이(一異)관계는 斷常中道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즉, ‘어떤 것에 연해서[의존해서] 생기는 것은 그것과 동일하지도 않고, 또 다르지도 않다. 그러므로 단(斷)도 아니고 상(常)도 아닌’(MS 18.10) 것이다. 주체와 작용 등은 상호 의존함으로써 서로를 성립시킨다. 주체는 작용이 있고 작용을 매개함으로써 주체가 되고, 작용 역시 주체에 의존함으로써 특정작용이 된다. 이렇게 서로 의존해서 성립되는 두 법은 서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이것이 상의상자(相依相資)이다.

11. That ambrosial teaching of the buddhas, those guardians of the world, is neither the same nor different, neither severed nor permanent.

不一亦不異  不常亦不斷
是名諸世尊  敎化甘露味

동일한 의미도 아니고 상이한 의미도 아니며, 斷滅도 아니고 常住도 아니다. 이것은 世間의 구원자인 여러 붓다들의 불멸의 가르침이다.(MKV)
[모든 사물의 본성은]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단절도 아니고 상주도 아니다. 이것이 세상의 큰 스승이신 부처님의 향기로운 가르침이다.(MS 18.11)
一義도 아니고 多義도 아니며, 斷絶도 아니고 常住도 아니다. 이것이 세상의 導師이신 여러 부처님들께서 가르치신 甘露의 말씀이다.

[Buddhapalita commentary: Not the same, not different, not severed, not permanent - that is the ambrosial teaching of the buddha, the guardian of the world.]

<해설>
원인과 결과는 서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 원인이 사라지고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는 원인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다른 것도 아니다. 이것은 일이중도(一異中道)를 설명한 것이다. 같은 이치로, 원인이 사라져도 결과가 생기기 때문에 단절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과가 생기면서 원인이 사라지기 때문에 상속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단상중도(斷常中道)를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一異中道(하나이면서도 다르고)와 斷常中道(단멸도 상주도 아닌)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12. When perfect buddhas do not appear, and when their disciples have died out, the wisdom of the self-awakened ones will vividly arise without reliance.

若佛不出世  佛法已滅盡
諸 支佛智  從於遠離生

여러 완전한 붓다[正覺者]들이 나타나지 않고 聲聞들이 사라져버렸을 때에, 세속을 떠남으로써 벽지불의 지혜가 일어난다.(MKV)
부처님께서 더 이상 세상에 출현하지 않으시고 불법의 수명 또한 다하여 이미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에도, '홀로 깨달으신 모든 부처님 ( 支佛)'의 지혜가 의지함이 없이 선명하게 발현될 것이다.(MS 18.12)
만일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시지 않고 제자(聲聞)도 다 열반에 든 다음에, 獨覺者의 지혜는 (心身의 세속을 초월하는) 遠離로부터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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